양귀자의 장편소설 『모순』은 개인의 성장과 갈등을 그린 작품인 동시에, 공간적 배경을 통해 인물의 심리와 사회적 구조를 교차시키는 뛰어난 서사성을 보여줍니다. 특히 서울이라는 대도시와 진진의 고향인 지방의 대비는 단순한 배경을 넘어 삶의 방식, 정서, 가치관의 충돌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본 글에서는 『모순』 속 서울과 지방의 공간 대비를 중심으로, 그것이 작품 전체에 미치는 의미를 분석하고 현대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정리해보겠습니다.
서울, 경쟁과 불안의 공간
『모순』에서 서울은 단순한 공간을 넘어서, 주인공 안진진의 내면을 반영하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합니다. 서울은 기회의 도시이자 동시에 긴장과 고립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이곳에서 진진은 직장을 다니며 자립적인 삶을 추구하지만,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 속에서 피로감을 느낍니다. 특히 지하철, 아파트, 사무실과 같은 일상의 공간들은 효율성과 속도를 상징합니다. 서울은 빠르게 흘러가며 사람에게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도시입니다. 진진은 때로 이 공간에서 무력감을 느끼며, 자신이 서울에 ‘적응한 존재’인지, 아니면 ‘억지로 맞춰가고 있는 존재’인지 자문합니다. 서울에서의 삶은 진진에게 독립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감정과 인간관계가 억눌리는 공간입니다. 친구와의 관계, 남자친구와의 소통 부재, 직장에서의 고립감 등은 이 도시의 특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서울을 통해 현대인이 겪는 외로움과 소외를 실감 나게 묘사하며, 그것이 개인의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고향, 정체성과 회복의 공간
서울에서 지쳐갈 때, 진진은 종종 자신의 고향인 지방 도시를 떠올리거나 방문합니다. 고향은 그녀의 어린 시절과 가족이 있는 곳으로, 서울과는 전혀 다른 정서를 지닌 공간입니다. 여유롭고 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진은 비로소 자신의 감정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지방은 작가가 표현하는 ‘회복의 공간’입니다. 어머니, 외삼촌, 이모 등 가족과의 갈등 속에서도 진진은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확인하게 됩니다. 특히 어머니와의 갈등은 단지 세대 차이를 넘어서, 진진의 자아 형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향은 그녀가 성장의 뼈대를 만든 공간이며, 서울에서 느끼는 단절감을 극복할 수 있는 단서들을 제공하는 장소입니다. 또한, 지방은 공동체적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으로 그려집니다. 이웃과 가족의 유대, 자연의 존재감, 일상적인 대화 등은 서울의 기능적인 삶과 대조적입니다. 진진은 이 공간을 통해 인간적인 온기와 감정을 회복하고, ‘사람답게 사는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공간 대비를 통한 정체성 탐색
『모순』에서 서울과 고향은 단순히 배경의 차원이 아니라, 인물의 정체성과 내면 세계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입니다. 서울은 속도와 경쟁, 고립의 상징이고, 고향은 유대와 기억, 회복의 상징입니다. 이 두 공간의 대비는 진진이 어떤 삶을 선택할지, 어떤 가치관을 따를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이 작품에서 진진은 서울과 고향을 반복적으로 오가며 정체성을 탐색합니다. 이 과정은 곧 ‘자기화’(self-identity)의 여정입니다. 진진이 경험하는 공간적 충돌은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자각하게 만드는 동력이 됩니다. 특히 독자들은 진진이 선택의 기로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을 겪는지를 보며 공감하게 됩니다. 이처럼 『모순』은 단순히 인물 중심의 서사에 머물지 않고, 공간을 하나의 주체로서 기능하게 만들어 작품의 깊이를 더합니다. 이는 양귀자의 문학적 기량을 드러내는 부분이며, 독자에게도 공간과 정체성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양귀자의 『모순』은 서울과 지방이라는 공간적 대비를 통해 인물의 내면과 삶의 방향을 심도 깊게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서울에서의 경쟁과 고립, 고향에서의 회복과 유대는 모두 진진이라는 인물의 정체성 형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공간 묘사를 통해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지금 우리의 삶도 어쩌면 진진처럼 공간 속 모순을 안고 있진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